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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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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김해군(金海郡)은 경상남도에 있었던 행정 구역으로, 1995년에 김해시와 통합하여 도농복합도시가 되었다.[1]

행정구역 변경이 없던 1906년까지의 김해군은 현재의 김해시, 부산 강서구(가락동·녹산동·명지동·강동동) 일대에 해당한다.[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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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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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 20년(680년) 금관군(金官郡)을 금관소경(金官小京)으로 승격하였다. 경덕왕 16년(757년) 한화 정책에 따라 일시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개칭하여 양주(良州, 현 양산시)에 속하게 되었다.

한편 신라 말 사회 변동기 김해 지역의 읍격(邑格)은 '소경'이 아닌 '부'(府)였는데, 지역에서 지방 세력이 등장한 현실을 인정한 신라 중앙정부가 김해소경을 김해부로 개편하여 지역 호족이 실질적으로 지역을 관할하게 하면서 통제하고자 힘을 쏟았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3] 신라 말기 김해 지역의 호족으로는 김인광(金仁匡)과 소충자(蘇忠子)·소율희(蘇律熙) 형제 등이 확인된다. 이들은 진례성을 중심으로 지김해부진례성제군사(知金海府進禮城諸軍事)[4]의 지위를 가지고 김해 지역을 지배하였으며, 당시 창원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봉림산문(鳳林山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김해·창원 일대에 세력권을 형성하였다.[5]

이들 김해 지역 호족들 사이에는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배 영역의 확장을 위한 갈등 관계를 보이면서 정복 전쟁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 소충자·소율희 형제의 대두 이전에 김해 지역의 호족이었던 김인광은 김유신의 후손인 신김씨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가락국기》에서 묘사하는 잡간 충지(소충자와 동일인물로 여겨진다)와 가락국왕의 후손간의 제사권을 둘러싼 다툼은 소충자·소율희 형제가 과거 김인광이 지배하던 영역까지 정복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기존 신김씨(가락 김씨)와의 갈등관계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5]

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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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23년(940년) 김해부(金海府)가 된 데에 이어 다시금 임해현(臨海縣)으로 개편되었다가 임해군(臨海郡)으로 개칭하였다. 이는 읍격의 강등으로 볼 수 있으며, 후삼국 시기 후백제 관할하에 있었던 까닭에 고려가 지역 통제 방식의 하나로 취한 조치였다.[6]

광종 22년(971년) 임해군이 다시금 김해부로 개편되었다. 이는 김해의 예전 위상을 감안하여 지역 통합차원에서 다시금 읍격을 회복시킨 것으로[6] 김해로써는 고을의 위상을 회복할 계기를 마련하는 전기였다.[6] 성종 14년(995년) 전국을 10도제 최저로 지방제도를 개편하면서 영동도(嶺東道) 금주안동도호부(金州安東都護府)로 개칭하였다.

현종 3년(1012년) 금주(金州)로 개칭하여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 동왕 9년(1018년) 의안군·함안군·칠원현·웅신현이 금주의 속읍(屬邑)이 되면서 금주는 지역의 거점도시로 서게 되었다.[7]

고려 시대의 김해, 금주는 육로 교통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해안 방어와 대외 통교의 요새지였다.[8] 금주에는 동남해 해안 방비를 맡은 동남해선병도부서사(東南海船兵都部署使) 본영이 세 차례 설치되었는데, 본영은 원래 태조 22년(939년) 경주에 설치되었던 것을 문종(文宗) 32년(1078년) 일본과의 교섭을 위한 교통 편의성의 문제를 감안하여 김해로 옮겼다. 이는 당시 김해가 차지하고 있는 대일관계의 위상을 고려한 조치이기도 했다.[9] 금주의 동남해도부서 본영은 남쪽 40리 지점에 위치한 명월산 아래 구량촌(仇良村)에 수참(水站)을 설치하고 객관을 두어 일본 사신과 상인을 관리하고 안내하는 등 대일 교류의 창구 역할을 담당하였다.[9]

동남해선병도부서사 본영은 김해 지역에 세 차례 설치되었는데, 1차는 문종 32년부터 명종(明宗) 20년(1190년), 2차는 신종 5년(1202년)부터 충렬왕(忠烈王) 19년(1293년), 3차는 공민왕(恭愍王) 17년(1368년)부터 우왕(禑王) 4년(1378년)까지의 사이였다.

문종 3년(1049년) 11월 일본 쓰시마 섬에서 수령 명임(明任) 등을 보내 고려의 표류민 김효(金孝) 등 스무 명을 김해로 인계하였으며, 문종 10년(1056년) 일본측의 정상위 권예조신 후지와라노 요리타다 등 서른 명이 김해에 건너오기도 하였다. 희종 2년(1202년) 일본의 사신 아키요리 등 마흔 명이 진봉선 세 척을 김해 남쪽 포구에 정박시키고 교역을 시도하였으며, 고종 30년(1243년) 1월 일본측에서 고려에 방물을 바치고 표류민을 귀환시킬 때에도 김해가 창구 역할을 맡았다.

몽골과의 전쟁이 끝난 뒤 몽골이 일본원정을 준비하면서 김해는 일본으로 파견되는 몽골 사신이 머무는 곳으로 활용되었는데, 원종 12년(1271년) 9월 몽골에서 일본으로 파견하는 일본국신사(日本國信使) 조양필이 김해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충렬왕 초년의 원나라의 일본 원정 때에도 금주는 출정군의 거점으로 속읍인 합포에 일본원정군의 출정기지가 세워졌으며, 몽골(원)의 진변만호부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원종(元宗) 12년(1271년) 삼별초 항쟁에 호응하여 일어났던 밀주(密州)에서의 봉기를 금주방어사 김훤이 평정한 공으로 금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하였는데, 충렬왕 19년(1293년) 현지 정리(丁吏)인 임대와 영리 허반·김언이 경상도안렴사 유호(劉顥)를 살해한 사건으로 현으로 강등되었다.[10]

충렬왕 34년(1308년) 금주목(金州牧)으로 승격하였다가 2년 뒤인 충선왕 2년(1310년) 다시 김해부가 되었다.

고려 시대 김해는 동쪽으로 양산 경계의 황산강까지 32리, 서쪽으로 창원 경계의 신원까지 33리, 남쪽으로 해변까지 6리, 남서쪽으로 웅신현 경계 천읍천까지 36리, 북쪽으로 밀양 경계 해양강까지 32리 25보, 서북쪽으로 창원 경계의 대토까지 65리 정도로, 대체로 동서 90리, 남북 38리 정도의 권역이었다.[11]

금주의 영현으로는 함안 및 의안군과 합포·칠원·구산의 3현이 있었으며, 제을미·성화예·달음포·감물야의 4개 향(鄕)과 수다·태산·천읍의 3개 부곡(部曲)을 거느리고 있었다.[12] 소(所)는 전하지 않고 있지만, 감물야향이 야철(冶鐵)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금주의 소였을 가능성이 있다.[13]

김해향교 풍화루. 이곡이 쓴 '김해부향교수헌기'(金海府鄕校水軒記)에는 김해부사 이국향이 부임하여 향교를 증축하고 수헌이라는 정자를 지었음을 전하고 있다.

고려 말 열 차례에 걸친 왜구의 침입으로 김해 지역 사회는 크게 타격을 입었다.[9] 금주에 편입되어 있던 속읍 가운데 일부는 12세기 말부터 하나씩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는데, 명종 2년(1172년) 김해의 속읍인 함안군과 의안군, 그리고 합포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되면서 금주의 관할을 처음으로 이탈하였고,[9] 충렬왕 8년(1282년) 의안군과 합포현이 일본원정에 공이 있다 하여 각각 의창현과 회원현으로 고치고 중앙에서 현령이 파견되는 주현이 되면서 금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공민왕 22년(1373년) 함안군에 지군사가 파견되면서 함안도 금주의 관할에서 분리되었고, 공양왕 2년(1390년) 칠원현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또한 금주의 관할에서 분리되었다.[9]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웅신현도 조선 문종 연간에 웅천현으로 독립한다.[14]

조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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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2년(1393년) 11월 각 도의 수관을 정할 때 경상도 5수관의 하나가 되었고, 태종 13년(1413년) 10월 정식으로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로 승격하였다. 이때 김해도호부는 웅천과 완포 두 현과 대산, 천읍 두 부곡을 거느리고 있었다.

세조 2년(1456년) 3월 판관을 설치하고, 이듬해(1457년) 10월 좌우중익을 폐하고 창원진에 속했다가 5년(1459년) 7월 김해진관을 설치하고, 창원부·함안군 및 거제·칠원·진해·고성·웅천 5개 현이 소속되었다. 이때 김해도호부사는 별중영장을 겸임하였다.

조선 왕조 마지막 김해부사는 고종 32년(1894년) 12월에 부임한 이규대였다. 그가 김해부사로 부임하고 이듬해 5월에 지방관제 개편으로 김해도호부가 진주관찰부에 속하는 김해군으로 개칭되면서[15] 부사에서 바로 군수로 바뀌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양력 1월 1일로 하는 태양력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이규대는 양력 1896년 12월까지 김해군수로 재임하며[16] 최초의 김해군수가 되었다.

1895년(조선 고종 32년) 6월 23일(음력 윤5월 1일) : 진주부 김해군(金海郡)으로 개편되었다.[15] 이듬해인 1896년(건양 원년) 8월 4일 :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17]

을사늑약 이듬해인 1906년 : 양산군 대상면·대하면이 김해군에 편입되고,[2] 대산면이 창원부로 이관되었다.[18]

대한제국 최후의 김해군수는 순종(純宗) 융희(隆熙) 4년(1910년) 3월에 부임했던 감인현(甘麟鉉, 1880~1964)이다.[16]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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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내용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구 행정구역신 행정구역
김해군 좌부면(左部面) 강창리 일부, 동상리/다전리 일부/부원리 일부, 다전리 일부/강창리 일부/(우부면)고서리 일부, 북내리/(우부면)고서리 일부/능동리 일부좌부면강창리(江倉里), 동상동, 부원동, 북내동
김해군 활천면(活川面) 남역리 일부, 마마리, 불암리/(가락면)식만리 일부/(하동면)수안리 일부, 삼방리, 어방리/남역리 일부, 지내리남역리(南驛里), 마마리(馬麻里), 불암리, 삼방리, 어방리, 지내리
김해군 우부면(右部面) 내동리, 답곡리/북외리/삼산리 일부, 삼계리/두곡리, 매정리/삼산리 일부, 외동리/봉곡리, 전하리/(좌부면)강창리 일부, 회현리/고서리 일부/(좌부면)강창리 일부, 흥동리 일부/(칠산면)화목리 일부우부면내동리, 답곡리(畓谷里), 삼계리, 삼산리(三山里), 외동리, 전하리, 회현리(會峴里), 흥동리
김해군 칠산면(七山面) 음법리, 이동리, 풍유리/(우부면)흥동리 일부, 화목리 일부음법리(陰法里), 이동리, 풍유리, 화목리
김해군 장유면(長有面) 화촌리/관동리 일부/(유하면)신문리 일부, 대청리 일부, 삼문리 일부, 수가리, 응달리, 율하리 일부/관동리 일부, 장유리/율하리 일부장유면관동리, 대청리, 삼문리, 수가리, 응달리, 율하리, 장유리
김해군 유하면(柳下面) 내덕리 일부/유하리 일부, 무계리 일부/내덕리 일부/(장유면)삼문리 일부, 무계리 일부, 내덕리 일부/신문리 일부/(장유면)삼문리 일부, 유하리 일부/무계리 일부내덕리, 무계리, 부곡리, 신문리, 유하리
김해군 하계면(下界面) 여래리 일부, 우동리 일부, 진영리/여래리 일부, 방동리 일부, 우동리 일부/방동리 일부, 좌곤리 일부, 좌곤리 일부하계면여래리, 우동리, 진영리, 방동리, 하계리, 좌곤리, 사산리
김해군 중북면(中北面) 내룡리, 본산리/(상북면)가동리 일부/(하계면)여래리 일부, 신용리, 설창리, 죽곡리 일부, 죽곡리 일부/의전리 일부내룡리, 본산리, 신용리, 설창리, 죽곡리, 의전리
김해군 상북면(上北面) 가산리, 가동리 일부, 시산리/가동리 일부/(밀양군 하남면)명례리 일부, 장방리이북면가산리, 가동리, 시산리, 장방리
김해군 하북면(下北面) 용덕리 일부/명동리 일부, 병동리 일부, 신천리 일부, 안곡리, 용덕리 일부/(생림면)생림리 일부, 신천리 일부/용덕리 일부, 퇴래리/병동리 일부/명동리 일부명동리, 병동리, 신천리, 안곡리, 안하리, 용덕리, 퇴래리
김해군 진례면(進禮面) 청천리/(중북면)의전리 일부, 시례리, 송정리, 신당리/조전리 일부, 조전리 일부/(중북면)의전리 일부, 조전리 일부진례면청천리, 시례리, 송정리, 신월리, 조전리, 신안리
김해군 율리면(栗里面) 고모리/고령리/상석리/(중북면)죽곡리 일부, 개동리/담안리 일부/(중북면)의전리 일부, 산본리/관동리/성법리/송현리 일부, 송현리 일부/담안리 일부고모리, 담안리, 산본리, 송현리
김해군 가락면(駕洛面) 봉림리 일부/죽림리 일부/(덕도면)제도리 일부, 식만리 일부/죽림리 일부, 죽림리 일부/봉림리 일부, 죽동리가락면봉림리, 식만리, 죽림리, 죽동리
김해군 덕도면(德道面) 대사리 일부/상덕리 일부/북정리 일부, 상덕리 일부/제도리 일부/제도리 일부, 제도리 일부대사리, 북정리, 상덕리, 제도리
김해군 대상면(大上面) 대지리 일부/출두리 일부/평강리 일부, 사덕리 일부/대지리 일부/출두리 일부, 출두리 일부/사덕리 일부/대지리 일부, 평강리 일부/대지리 일부/(대하면)사두리 일부/(덕도면)효울리 일부대저면대지리, 사덕리, 출두리, 평강리
김해군 대하면(大下面) 덕두리 일부/맥도리 일부, 도도리 일부/소덕리 일부/덕두리 일부/맥도리 일부, 맥도리 일부, 사두리 일부/소덕리 일부, 설만리/사두리 일부/(덕도면)효울리 일부/제도리 일부덕두리, 도도리, 맥도리, 사두리, 소덕리, 울만리
김해군 녹산면(菉山面) 녹산리, 화전리, 송정리/(마산부 웅동면)가동리 일부녹산면녹산리, 화전리, 송정리
김해군 태야면(台也面) 범방리/탑동리, 구랑리/소압리 일부, 미음리/상룡리, 지사리/소압리 일부, 생활리/중곡리범방리, 구랑리, 미음리, 지사리, 생곡리
김해군 명지면(鳴旨面) 조동리 일부/중리 일부/동리 일부/신전리 일부, 평성리/조동리 일부, 중리 일부, 신전리 일부, 동리 일부, 진목리/(덕도면)제도리 일부, 신전리 일부명지면조동리, 평성리, 중리, 신전리, 동리, 진목리, 신호리
김해군 하동면(下東面) 수안리 일부, 주중리/주동리 일부, 주동리 일부/초정리 일부, 시례리/초정리 일부, 초정리 일부, 괴정리, 조눌리, 대감리, 덕산리 일부, 월당리/평촌리/덕산리 일부하동면수안리, 주중리, 주동리, 예안리, 초정리, 괴정리, 조눌리, 대감리, 덕산리, 월촌리
김해군 상동면(上東面) 여차리, 감로리, 매리, 대감리, 묵방리, 우계리상동면여차리, 감로리, 매리, 대감리, 묵방리, 우계리
김해군 주촌면 (酒村面) 외선리/원지리 일부, 천곡리/연지리/망덕리 일부, 망덕리 일부, 농소리, 내삼리, 양동리/상가리, 덕암리 일부, 원지리 일부/덕암리 일부주촌면선지리, 천곡리, 망덕리, 농소리, 내삼리, 양동리, 덕암리, 원지리
김해군 생림면 (生林面) 금곡리 일부, 사촌리 일부, 나전리/사촌리 일부, 봉림리/생림리 일부, 생철리/도요리 일부, 도요리 일부, 도요리 일부, 마사리/(밀양군 하동면)삼랑리 일부, 금곡리 일부/생림리 일부/(하북면)용덕리 일부생림면금곡리, 사촌리, 나전리, 봉림리, 생철리, 도요리, 안양리, 마사리, 생림리
14면 - 가락면, 좌부면, 우부면, 진례면, 장유면, 이북면, 하계면, 대저면, 녹산면, 주촌면, 상동면, 하동면, 생림면, 명지면
  • 1918년 7월 1일 : 좌부면과 우부면이 김해면으로 합면되었다. (13면)
  • 1928년 4월 1일 : 하계면을 진영면으로 개칭하였다.[19]
  • 1931년 11월 1일 : 김해면을 김해읍으로 승격하였다.[20] (1읍 12면)
  • 1941년 11월 1일 : 김해읍 동리명칭을 일본식으로 변경하였다.
구 행정구역 (법정동)신 행정구역
김해읍 동상리, 회현리, 부원리, 답곡리, 삼산리김해읍 조일정(朝日町), 봉황정(鳳凰町), 영정(榮町), 대성정(大成町), 구산정(龜山町)

해방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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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인 1947년 6월 25일, 일본식 정(町)명을 개칭하였다.

구 행정구역 (법정동)신 행정구역
김해읍 조일정, 봉황정, 영정, 대성정, 구산정김해읍 동상동, 봉황동, 부원동, 대성동, 구산동
김해읍 음법리, 남역리, 마마리김해읍 명법동, 삼정동, 안동
경남 김해군 대저읍 중촌리의 비닐하우스 (1974년)
법률 제3014호
구 행정구역신 행정구역
대저읍 출두리(出頭里), 사덕리(沙德里), 대지리(大池里), 평강리(平江里)부산직할시 북구대저1동
대저읍 덕두리(德斗里), 소덕리(小德里), 도도리(桃島里), 사두리(沙頭里), 맥도리(麥島里), 울만리(蔚滿里) 대저2동
가락면 대사리(大沙里), 북정리(北亭里), 상덕리(上德里), 제도리(濟島里)강동동
명지면 일원(신호리 제외)[25]명지동
명지면 신호리녹산면 신호리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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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의 행정 구역[29]과 현재의 행정 구역 비교
1914년현재
면리구·읍·면동·리
좌부면
(左部面)
[30]
남역리, 어방리, 삼방리, 마마리, 지내리, 불암리, 동상리, 북내동, 부원리, 강창리김해시삼정동, 어방동, 삼방동, 안동, 지내동, 불암동, 동상동, 서상동, 부원동, 강동
우부면
(右部面)
[31]
화목리, 풍유리, 음법리, 이동리, 삼계리, 삼산리, 답곡리, 외동리, 내동리, 회현리, 흥동리, 전하리화목동, 풍유동, 명법동, 이동, 삼계동, 구산동, 대성동, 외동, 내동, 봉황동, 흥동, 전하동
장유면
(長有面)
[32]
유하리, 내덕리, 신문리, 부곡리, 무계리, 대청리, 삼문리, 관동리, 율하리, 장유리, 응달리, 수가리유하동, 내덕동, 신문동, 부곡동, 무계동, 대청동, 삼문동, 관동동, 율하동, 장유동, 응달동, 수가동
하계면
(下界面)
[33]
신용리, 내룡리, 설창리, 죽곡리, 의전리, 본산리, 여래리, 우동리, 진영리, 방동리, 하계리, 좌곤리, 사산리김해시
진영읍
신용리, 내룡리, 설창리, 죽곡리, 의전리, 본산리, 여래리, 우동리, 진영리, 방동리, 하계리, 좌곤리, 시산리
이북면
(二北面)
[34]
가산리, 가동리, 장방리, 시산리, 신천리, 용덕리, 명동리, 안곡리, 퇴래리, 병동리, 안하리김해시
한림면
가산리, 가동리, 장방리, 시산리, 신천리, 용덕리, 명동리, 안곡리, 퇴래리, 병동리, 안하리
생림면
(生林面)
금곡리금곡리
사촌리, 나전리, 봉림리, 생철리, 도요리, 안양리, 마사리, 생림리김해시
생림면
사촌리, 나전리, 봉림리, 생철리, 도요리, 안양리, 마사리, 생림리
상동면
(上東面)
여차리, 감로리, 매리, 대감리, 묵방리, 우계리김해시
상동면
여차리, 감로리, 매리, 대감리, 묵방리, 우계리
하동면
(下東面)
수안리, 주중리, 주동리, 예안리, 초정리, 괴정리, 조눌리, 대감리, 덕산리, 월촌리김해시
대동면
수안리, 주중리, 주동리, 예안리, 초정리, 괴정리, 조눌리, 대감리, 덕산리, 월촌리
주촌면
(酒村面)
선지리, 천곡리, 망덕리, 농소리, 내삼리, 양동리, 덕암리, 원지리김해시
주촌면
선지리, 천곡리, 망덕리, 농소리, 내삼리, 양동리, 덕암리, 원지리
진례면
(進禮面)
[35]
고모리, 담안리, 송현리, 산본리, 청천리, 시례리, 송정리, 신월리, 조전리, 신안리김해시
진례면
고모리, 담안리, 송현리, 산본리, 청천리, 시례리, 송정리, 신월리, 조전리, 신안리
가락면
(駕洛面)
[36]
식만리, 죽동리, 죽림리, 봉림리부산
강서구
식만동, 죽동동, 죽림동, 봉림동
대사리, 북정리, 제도리, 상덕리강동동
대저면
(大渚面)
[37]
출두리, 사덕리, 대지리, 평강리대저1동
덕두리, 소덕리, 도도리, 사두리, 맥도리, 울만리대저2동
명지면
(鳴旨面)
조동리, 평성리, 중리, 신전리, 동리, 진목리명지동
신호리신호동
녹산면
(菉山面)
[38]
범방리, 구랑리, 미음리, 지사리, 생곡리, 녹산리, 화전리, 송정리범방동, 구랑동, 미음동, 지사동, 생곡동, 녹산동, 화전동, 송정동

지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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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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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김해부사의 정식 명칭은 김해도호부사로 품계는 종3품이었고, 종2품 경상도관찰사(감사)의 지휘를 받았다. 관찰사의 지휘를 받는 부사(경상도의 김해부사, 밀양부사 등)보다 높은 외관직 품계는 정3품인 목사(진주목사 등), 대도호부사(안동대도호부사, 창원대도호부사 등)가 있었고, 낮은 외관직 품계는 종4품 군수(합천군수, 함양군수 등), 종5품 현령(고성현령 등), 종6품 현감(사천현감 등)이 있었다.

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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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신 - 충선왕 연간에 김해부사를 지냈다.
  • 이암 - 충선왕 연간에 김해부사를 지냈다.
  • 정국경 - 공민왕 연간에 김해부사를 지냈다(《익재난고》).
  • 박위 - 우왕 때인 1375년에 김해부사를 지냈다.
  • 심효생 - 우왕 때에 김해부사를 지냈다.
  • 장중양 - 고려 말기에 김해부사를 지냈다(인동장씨보).

조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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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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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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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법률 제4948호 경기도평택시와5개도농복합형태의시설치등에관한법률 (1995년 5월 10일)
  2. 1 2 부산 강서구 대저1동과 대저2동은 1906년 이전에는 부산 북구와 함께 양산군에 속해 있었고, 1906년에 대상면(현 대저1동)과 대하면(현 대저2동)이 김해군에, 좌이면(부산 북구)이 동래군에 편입되었다.
  3. ↑ 《김해시사》3권, 15~16쪽
  4. ↑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
  5. 1 2 《김해시사》3권, 15쪽
  6. 1 2 3 《김해시사》3권, 16쪽
  7. ↑ 《김해시사》3권, 17쪽
  8. ↑ 《김해시사》3권, 18쪽
  9. 1 2 3 4 5 《김해시사》3권, 19쪽
  10. ↑ 《고려사절요》권21, 충렬왕 19년(1293년) 1월
  11. ↑ 《김해시사》3권, 17쪽
  12. ↑ 이병태(2002), 《김해지리지(국역판)》김해문화원, 23쪽;《김해시사》3권, 17쪽
  13. ↑ 《김해시사》3권, 17쪽
  14. ↑ 《김해시사》3권, 19~20쪽
  15. 1 2 칙령 제98호 지방제도의개정에관한안건
  16. 1 2 최학삼·김우락 (2021) 《김해부사 이야기》도서출판 박영사, 157쪽
  17. ↑ 칙령 제36호 지방제도와관제개정에관한안건 (1896년 8월 4일)
  18. ↑ 칙령 제49호 지방구역 정리 건
  19. ↑ 경상남도령 제2호 (1928년 1월 28일)
  20. ↑ 조선총독부령 제132호 (1931년 10월 20일)
  21. ↑ 조선총독부령 제243호 (1942년 9월 30일)
  22. ↑ 조선총독부령 제7호 (1943년 1월 18일)
  23. ↑ 대통령령 제6543호 읍설치에관한규정 (1973년 3월 12일)
  24. ↑ 법률 제3014호 구미시설치및부산시·경상남도간관할구역조정에관한법률 (1977년 12월 19일)
  25. ↑ 중리(中里), 동리(東里), 진목리(眞木里), 조동리(助東里), 평성리(平城里), 신전리(新田里)
  26. ↑ 법률 제3425호 광명시등시설치와군관할구역변경에관한법률 (1981년 4월 13일)
  27. ↑ 대통령령 제12007호 시·군·구·읍·면의관할구역변경및면의명칭변경에관한규정 (1986년 12월 23일)
  28. ↑ 법률 제4051호 부산직할시강서구설치및시·도의관할구역변경에관한법률 (1988년 12월 31일)
  29. ↑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 (1917년)
  30. ↑ 좌부면은 좌부면과 활천면(活川面)의 합면이다.
  31. ↑ 우부면은 우부면과 칠산면(七山面)의 합면이다.
  32. ↑ 장유면은 장유면과 유하면(柳下面)의 합면이다.
  33. ↑ 하계면은 하계면과 중북면(中北面)의 합면이다.
  34. ↑ 이북면은 상북면(上北面)과 하북면(下北面)의 합면이다.
  35. ↑ 진례면은 진례면과 율리면(栗里面)의 합면이다.
  36. ↑ 가락면은 가락면과 덕도면(德道面)의 합면이다.
  37. ↑ 대저면은 대상면(大上面)과 대하면(大下面)의 합면이다.
  38. ↑ 녹산면은 녹산면과 태야면(台也面)의 합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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