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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리 김 문화 유산 Part 1 #186


노리 양식의 기원과 발전
오모리에서의 노리 문화

【에도 시대의 어업】
에도 시대(江戸時代)에,
어부들은 생계를 위해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했다.


【오사이핫카우라(御菜八ヶ浦)】

시간이 흐르면서,
이 지역은 ‘오사이핫카우라’라고 불리게 되었고,
어부들은 쇼군의 저택에
신선한 생선을
바쳐야 했다.

이러한 공물은 항상 매일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필요에 따라,
혹은 정해진 시기에
제공되곤 했다.


【어업 관행에서 비롯된 발전】

항상 안전하게
신선한 생선을 바칠 수 있도록,
어부들은 먼바다에
대나무 우리(비비에)를 설치하여,
잡은 물고기를
일시적으로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생선을 바쳐야 하는 의무 아래에서,  
 어부들은 자연이 주는 선물과  
 자신들의 준비 수단을 조화시키며  
 일상을 지키고자 했다.」

이 대나무 우리들은 훗날
노리 양식이 발전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우연한 발견이 연 길】

어느 겨울날,
평소처럼 일을 하던 중,
어부들은 ‘풀’ —
노리(海苔)가
물고기를 보관하던
그 대나무 울타리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현상은
완전히 자연적으로 나타난 것이었으며,
이 바다 환경에서
새로운 활용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역사 기록에는
이 시기의 소중한 여러 일화가 전해지며,
오늘날 오모리(大森) 지역에서
노리 양식이 시작된
초기 징후로 여겨지고 있다.

이 발견은 진정으로
새로운 도전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오모리 김 문화의 기원

1682년 (천화 2년, 天和2年),
오모리(大森) 출신의
노구치 로쿠로자에몬 (野口六郎左衛門) 
막부에 정식 인정을 요청하는
청원을 제출했다.

이 행동은 오늘날 
오모리 김 산업의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소다히비(ソダヒビ)’의 발명

1717년(교호 2년),
아사쿠사 출신의 어부 야헤이(弥兵衛)
신가와(品川) 앞바다에서
잎을 제거한 나뭇가지를 묶은
‘소다히비(ソダヒビ)’
즉 최초의 김 양식 도구를 시험했고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다.

이 혁신은
우연에 의존하던 김 채취를
의도적인 양식으로 전환한
혁신적인
사건이었다.

1. 대나무 ‘히비(hibi)’ 제작 (7월–8월)
갓 베어낸 대나무를 쪼개어
히비 구조물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준비한다.

2. 바다에 히비 설치 (9월 말)
얕은 바닷물 위의 작업대에서,
해안 지역에
대나무 히비를
수직으로 꽂아 설치한다.

‘도박풀(博打草)’의 시대

하지만 당시에는
김의 생활사(생태 주기)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수확량은 여전히
운과 날씨에 크게 좌우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김을
애정 어린 별칭으로
‘도박풀(博打草)’,
또는 ‘운풀(運ぐさ)’
이라고 부르곤 했다.

“기술의 발전은
 생산을 안정시키고
 수익성을 높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막부와 ‘어전김’

막부는 김을
귀중한 재정 자원으로 여겼고,
시장 유통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또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徳川家康) 
본인도 김을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 점이 김 산업의 성장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고도 한다.


종이뜨기 기술의 도입

1772년 (안에이 연간, 安永年間) 무렵,
아사쿠사(浅草)에서 발달한
‘종이 뜨기 (紙漉き)’ 기술
김 가공에 적용되었다.


네모난 김의 탄생

이 기술의 도입은
갈대 발 위에서 떠내는
네모난 김(김 장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김의 황금기

거리의 초밥 노점이 늘어나면서,
손으로 말아 만드는 초밥,
손말이(테마키寿司)
백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김 요리는
말 그대로 황금기에 들어섰다.


‘아사쿠사 김’의 명성

오모리에서 생산·가공된 김은
뛰어난 맛과 품질로
‘아사쿠사 김(浅草海苔)’이라는
이름으로 에도의 명물로 자리 잡았고,
전국에 알려졌습니다.


‘아사쿠사 김’ 이름의 또 다른 기원

사실 ‘아사쿠사 김’이라는 이름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또 다른 설이 있다.

옛날 아사쿠사 지역은
바다였으나,
여러 차례의 큰 지진 이후
땅이 융기하여
점차 육지가 되었다.

그 결과
아사쿠사에서 김을 채취할 수 없게 되자,
일부 어부들이
오모리 지역으로 이주해
김 채취와 가공 기술을
계속 이어갔다고 한다.

따라서 ‘아사쿠사 김’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지질 변화의 역사적 흔적으로도
해석된다.


혁신과 산업적 성장

“가공 기술과 시장 전략의 혁신이  
  김을 거대한 산업으로 끌어올렸다.”

어부들의 창의성,
우연한 발견,
그리고 기술 혁신이 더해져
오모리의 김 양식 전통은
굳건히 자리 잡았다.


다음 Part 2 예고

Part 2에서는
스와 사람들의 연대와
상업 정신,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김 상인의 기반을 만들고
막강한 조직을
구축했는지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지역에도
우연한 발견이나
다른 산업의 기술이
접목되어
크게 성장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있나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 사진
 전후 오모리 김 양식장
 (대여: 오모리 김 박물관)
 戦後 海苔網の漁場 (大森 海苔のふるさと館 提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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