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뉴욕서 공개 커밍아웃, 삶을 작업으로
향·언어·참여로 퀴어의 삶과 장소 드러내
‘칼군무’·‘애교’ 신작으로 규범과 집단주의 질문
“퀴어미술은 모든 세대·젠더에 열린 미술”
오인환 작가가 지난 11일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오인환 vs. 장서영: 휴먼 에러’에 전시된 ‘무지개처럼, 우리는 하나가 아니기에 아름답지 않은가’ 작업 앞에 앉아 있다. 작가가 참여하는 ‘이반미술모임’ 회원들에게 자신이 소유한 물건 중 무지개색에 해당하는 물건을 찾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도록 해 사진과 전시로 선보인 프로젝트이다. 동시대 소비문화를 반영하는 공산품에서도 개별적인 삶과 취향이 드러난다. 권도현 기자
오인환의 ‘퍼스널 애드’(1996)는 미국 뉴욕의 주간지 ‘빌리지보이스’ 개인광고란에 1996년 10월22일부터 12월3일까지 로니 혼, 로버트 고버, 백남준, 하임 스타인벡, 신디 셔먼을 찾는 내용의 광고를 5회 연속으로 게재했다. 로버트 고버는 이후 다른 자리에서 만날 일이 있었는데, 자신을 표적으로 삼은 광고인 줄 알고 무서워했다가 광고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예술가의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고버의 조수로도 잠시 일했다. 작가 제공
“GKM ARTIST, Seeking the real NAM JUNE PAIK…”
1996년 뉴욕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의 개인광고란에 낯선 약어가 등장했다. ‘Gay Korean Male’의 머리글자였다. 오인환은 자신을 ‘게이 한국인 남성 예술가’로 밝히고, 백남준·신디 셔먼 등 유명 미술가들을 호명하며 ‘진짜’를 찾는다고 썼다. 공적인 커밍아웃이자 미술가로서의 자기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올해,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작가 74명(팀)이 참여한 대규모 퀴어미술 전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이 열렸고, 국립현대미술관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는 그의 작업을 한국 개념미술의 흐름에서 다시 읽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오인환 vs. 장서영: 휴먼 에러’에서는 보편과 규범 바깥의 ‘사각지대’를 탐색해 온 흐름 속에서 신작을 선보였다.
오인환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성적지향을 드러내고, 퀴어 이슈를 작품으로 선보인 작가 중 한 명이다. 지난 11일 서울 노원구 북서울미술관에서 만난 그는 “대규모 퀴어 전시와 개념미술을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 것 자체가 한국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해졌음을 보여준다”며 “반갑지만 진작 열렸어야 했다. 변화의 속도는 너무 느렸고 이제 시작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오인환은 1995년 미국으로 건너가며 커밍아웃했다. 당시 한국에선 게이 정체성을 공개하고 작가로 활동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단순히 공부하러 간 것이 아니라 삶을 바꾸고, 자신을 자유롭게 탐구하겠다는 결심이 있었어요.” 그는 “나의 삶을 나의 미술로 만든다”는 모토에 따라 커밍아웃을 작업에 끌어들였다.
‘빌리지 보이스’ 개인광고란은 오늘날 데이팅앱처럼 대중적인 창구였다. 커밍아웃이 기존 관계의 단절·변화를 불러온다면, 개인광고는 새로운 관계를 여는 방식이었다. “광고를 이해하고 응답하는 사람이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든 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열어둔 개념이었죠.”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이 ‘퍼스널 애드’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커밍아웃을 창작 형식으로 전환한 첫 사례이자, 소통 과정에서 의미를 만드는 개념미술로 조명됐다.
1999년 말 귀국했을 때 한국 사회의 성수자에 대한 인식은 낮았지만, 해외 경험을 쌓은 작가·기획자와 대안공간이 늘어난 미술계는 예상보다 열려 있었다. 그러나 퀴어의 삶과 장소는 여전히 사회의 시야 밖에 있었다. 그는 게이 정체성을 작업의 전면에 내세웠다.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은 2001년부터 전시가 열리는 도시의 게이 바와 클럽 이름을 향가루로 쓰고 태워온 작업이다. 이름은 서서히 재가 되지만 향은 전시장에 퍼져 관객의 몸에 스민다. “처음에는 게이 커뮤니티를 소개하는 데 초점이 있었지만 반복하면서 그 안에 역사가 쌓였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장소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 기억을 다시 만나는 작업으로도 읽힐 수 있어요.”
오인환의 작업은 퀴어 정체성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퀴어한 시선으로 사회 구조를 들여다본다. “왜 어떤 정체성은 차별받고 어떤 정체성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가를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향과 언어, 참여와 협업을 오가며 “결과 대신 과정, 작가 대신 관객, 매체 중심 대신 탈매체”를 택했다.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사각지대 찾기’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를 집약한 작업 언어가 ‘사각지대 찾기’다. “사각지대는 단순히 안 보이는 곳이 아니라 보편과 평균을 정상으로 여기는 사회의 관심 밖에 있는 곳입니다. 바깥의 차이를 비추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예술, 특히 퀴어미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올해의 작가상’에서 폐쇄회로(CC)TV에 잡히지 않는 전시장 영역을 분홍색 테이프로 표시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몇 배나 컸어요. 지금도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사각지대가 넓게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서울미술관에서 선보인 신작은 K팝 아이돌 문화에서 찾은 또 하나의 사각지대다. ‘칼군무’는 댄서 5명의 몸에 단 카메라로 완벽한 군무 속 지워지지 않는 개인의 차이를 드러내고, ‘애교 프로젝트’는 20~60대 남성 배우 15명에게 젊은 여성에게 요구돼온 ‘애교’를 수행하게 해 성별과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낯설게 만든다. 두 작업은 가부장제·국가주의·집단주의가 새로운 세대의 대중문화 속에서도 반복되는 방식을 드러낸다.
사각지대를 찾는 일은 차이를 지우지 않으면서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이는 전시 주제인 ‘하나가 아닌 우리, 하나가 아닌 나’로 이어진다. “일치는 일치하지 않는 것을 배제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다’라고 강조하기보다 우리 안의 차이를 포용해야 해요.”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은 그 연대가 세대를 가로질러 드러난 자리였다. “30년 전에도 퀴어 작가는 있었지만 큐레이터나 비평가, 미술사가는 눈에 띄지 않았어요. 지금은 작가부터 스스로를 퀴어라고 부르는 관객까지 다양한 위치에 퀴어가 존재합니다.” 다만 “성소수자를 둘러싼 사회적·제도적 조건은 조금밖에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제 한국 퀴어미술에도 계보를 그릴 수 있을까. 그는 계보보다 연대를 강조했다. “누가 먼저이고 나중인지보다 서로 다른 세대가 어떻게 연대하고 보완했는지가 중요합니다.” ‘퀴어 작가’와 ‘개념미술가’, ‘제도비판적 작가’라는 이름은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퀴어미술을 대표하거나, 작업이 하나의 전형으로 고정되는 것은 경계한다. “퀴어미술은 소수자만을 위한 미술이 아니라 모든 세대와 젠더, 섹슈얼리티에 열려 있는 미술입니다.”
오인환 작가가 ‘하나가 아닌 우리, 하나가 아닌 나’라는 문구 앞에 서있다. 다양성과 차이의 가치를 옹호하는 문구를 간판 형태로 제작한 작업이다. 권도현 기자
오인환 작가의 신작 ‘칼군무’. 권도현 기자
오인환 작가의 신작 ‘애교 프로젝트’. 권도현 기자